기록보기
KBS-TV 시청료거부운동

표제 : KBS-TV 시청료거부운동


구분 :


사건발생일 : 19860120


사건내용 : <사건경과>
-86. 01.20, KBS-TV 시청료 거부 기독교 범국민운동본부 발족
-04.01, KBS-TV 시청료에 관한 교육 세미나(주최: 시청료 거부 기독교 범국민운동본부, 장소:한국교회 1백주년 기념관)
-04.08, 신민당, 캠페인 확산 결의
시청료 거부 기독교 범국민운동본부, ‘목회서신’ 채택
-05.15, 김수환 추기경, 기독교방송 ‘오늘을 생각하며’에서 언론민주화 필요성 공개 요구
-07.11, 시청료 거부 기독교 범국민운동본부 임원단, 시청료 거부 가두캠페인(지하철 서울역, 종로5가역 등지)
-09.29, ‘시청료 거부 및 언론자유 공동대책위원회‘ 결성 결의

<사건배경>
불법적인 12?12 쿠데타와 광주민중에 대한 무자비한 학살로 권력에 등극한 전두환 정권에겐 태생부터 권력의 정당성이 있을 수 없었다. 따라서 정부에 대한 비판의 항거의 목소리는 최대한 억눌러야만 했고, 공영방송이었던 KBS는 정부의 지침을 충실히 전달하는 앵무새 역할을 기꺼이 담당하고 있었다. 일례로, 당시 인구에 회자되던 ‘땡전뉴스’라는 표현이 상징하는 바처럼, 공익성을 상실하고 정부?여당방송으로 전락해 버린 KBS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과 분노는 자연스런 것이었다.

<사건내용>
이런 배경 하에, 애초 1980년대 초?중반부터 확산되어오던 TV시청료 거부운동은 1986년 1월 20일 ‘KBS-TV 시청료 거부 기독교 범국민운동본부’(본부장 김지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장)의 발족을 계기로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된다. 2월 14일, 운동본부는 “KBS-TV를 보지 않습니다” 라는 문구의 스티커 5만부와 홍보유인물 1만부를 제작, 배포하였다.
4월1일, 김상근 목사는 동 운동본부가 주최한 “KBS-TV 시청료에 관한 교육세미나”를 통해 다음과 같이 시청료 거부운동의 이유를 여덟 가지로 지적했다. 첫째, KBS-TV는 지난해 2?12 국회의원 선거 보도의 경우에서처럼 여당인 민정당의 홍보, 선전매체로 전락했다. 둘째, 특히 학원문제에 대한 보도에선 왜곡되고 일방적인 보도만을 보여줄 따름이다. 주로 소요장면, 피해상황 등을 중점적으로 취재하여 같은 장면을 반복적으로 보여주기 일쑤다. 셋째, 일부 공산권 국가를 제외한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2월 마지막 주에 펼쳐진 필리핀 사태를 진지하고 신속하게 보도한데 반해 KBS-TV는 완전히 외면했다. 넷째, 공영TV는 시청자에게 공정한 뉴스를 전달하고 국민정신을 함양하는 건전한 교양 프로를 방영하며, 균형되고 건강한 오락물을 제공해야 할 것이나, KBS-TV는 국민 모두의 눈과 귀를 현혹시킴으로써 문제의식을 퇴색시키고 판단을 흐리게 하는 데만 여념이 없다. 다섯째,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2천만 노동자, 농민의 질곡상에 대해서는 외면을 한 채, 허구에 찬 성공사례만을 습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여섯째, KBS가 과다하게 프로 스포츠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은 국민의 ‘정치의식 잠재우기’ 외에도 광고수입의 극대화를 노린 반공영적인 발상에서였다. 일곱째, 환락가의 무대가 안방으로까지 밀고 들어와 어린 청소년들의 성적 순결의식을 갉아먹는 데 KBS가 앞장서고 있다. 여덟째, 공영방송을 지배하고 있는 대단히 육감적이고 축축한 목소리의 광고방송 내용이다. “주고 싶은 마음 먹고 싶은 마음”이라고 하는 선전, “돌려서 먹을래”, “빨아서 먹을래”와 같은 선전. 돌려서 먹고, 빨아먹자는 것이 무엇을 연상시키는지 사춘기의 청소년들이라면 곧바로 알아차릴 것이다. 바로 그 점을 노린 CM을 공영방송이라고 하는 KBS가 제대로 걸르지도 않고 당연한 듯 몇 푼의 수입을 더 올리기 위해 내보내고 있다.(윤재걸, <KBS의 편파성을 해부한다>, 『신동아』, 1986년 5월, 212~242쪽)
이와 같이 시청료거부운동은 KBS의 보도의 정치적 편파성과 프로그램 소재의 제한성, 광고의 무분별한 상업성 등의 문제로부터 비롯되었다. 이러한 KBS의 문제점은 정부의 인사권 장악과 정치성향의 방송인들의 존재와도 관련된 것이었다. “1980년 9월 1일 전두환 씨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KBS는 취임 1주년을 시작으로 해마다 어김없이 대대적인 특집방송으로 그의 업적을 홍보해왔다. 이 같은 대통령 통치강화를 위한 홍보용 프로그램은 주로 보도국 정치부에서 제작되었다….(중략)....실제로 이같은 대통령 특집 프로그램을 잘 만들어 군부독재 정권의 충실한 주구 노릇을 한 간부들은 모두 요직으로 승진했고 그 대신 KBS는 관제언론, 정권의 하수인 이라는 치욕적인 나락으로 점점 더 빠져들었다.”(KBS 노동조합, 『5공하 KBS 방송기록: 80~87년 KBS 특집에 나타난 권언유착의 실상』, KBS 노동조합, 1989, 112쪽)
4월 8일, 신민당의 캠페인 동참의사 표명과 함께 운동본부는 산하 6개 교단장회의를 통해 ‘목회서신’을 채택키로 했다. 당시의 시청료 거부운동의 활발한 진행상황과 국민들의 호응과 지지는 운동본부의 경과보고에 대한 언론의 보도에 여실히 드러난다. “운동본부측은 또 ‘상업광고 편파보도 KBS-TV 시청료를 낼 수 없습니다’ 라고 쓴 새 전단 5만부를 8일에 제작, 배부하고 계속 추가 제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운동본부측은 그 동안 성금을 기탁해온 독지가가 있었고 스티커 10만 장을 제작, 기부하겠다는 독지가가 2명이나 되며 이 운동에 참가하겠다는 자원봉사자가 쇄도하고 있다고 밝혔다.”(『동아일보』, 1986년 4월 8일자)
한편, 이에 대한 정부의 반응은 시청료 거부운동을 정권안보의 불안요인으로까지 인식했던 것 같다. 당시 정무1 수석비서관인 허문도는 시청료 거부운동을 “반체제적 공세”라고 규정하며(김성익, 『전두환 육성증언』, 조선일보사, 1992, 65쪽) 이후 정부는 운동의 범국민적 지지를 의식하여 KBS 운영개선 방안을 내놨지만 그것은 미봉책에 불과한 것이었다.
이후, 국민적 지지를 쌓아가던 시청료 거부운동은 김수환 추기경의 공개적 지지발언 이후 더욱 자신감을 얻고 7월11일에는 운동본부 임원단을 중심으로 가두홍보캠페인까지 전개했다. 9월 29일, 이러한 지속적인 활동들이 조직적으로 결실을 맺게되는 것이 ‘시청료 거부 및 언론자유 공동대책위원회’의 결성의 결의다. 이 공대위의 참여단체는 위 운동본부와 민통련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 여성단체연합 외에 신민당과 민추협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시청료 거부운동은, 한편으로는 언론의 권력종속화 현실에 국민적 차원의 항의행동이었으며 또 다른 편에서는 공영방송 제자리찾기운동의 출발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시청료 거부운동의 이러한 의미들은 87년 6월항쟁을 위한 민주화투쟁의 일환으로서도 평가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사건사전번호 : H-1083



연관자료 : 이 자료에는 연관된 자료가 없습니다